위키드의 엘파바와 오즈의 마법사의 서쪽 마녀 재해석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판타지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를 기억하시나요?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도착한 오즈의 나라에서, 서쪽 마녀는 반드시 물리쳐야 할 절대악이었습니다.

하지만 2003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위키드’는 이 이야기를 완전히 뒤바꿔놓았습니다.

그동안 ‘악한 마녀’로만 알려졌던 서쪽 마녀 엘파바의 눈으로 오즈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알던 동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6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고, 선과 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바라보면서, 우리는 의외의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죠.

오늘은 두 작품 속 서쪽 마녀의 모습을 비교하며, 달라진 시선과 숨겨진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위키드 캐릭터의 입체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서쪽 마녀는 도로시가 물리쳐야 할 단순한 악역이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는 마녀는 관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절대악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위키드는 이 평면적인 캐릭터에 깊이 있는 서사를 부여하며 ‘엘파바’라는 이름의 입체적인 인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진 것 때문에 가족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뛰어난 마법 실력과 정의감을 지닌 인물로, 시크 대학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오즈의 마법사에게 인정받게 됩니다.

이러한 과거사는 관객들에게 ‘악한 마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습니다.

특히 엘파바가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습은 그녀를 단순한 악인이 아닌, 신념을 가진 투사로 보여주었습니다.

말하는 동물들이 목소리를 빼앗기고 억압받는 현실에 맞서 싸우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영웅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기존 작품에서 악마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졌던 서쪽 마녀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글린다와의 우정, 피에로와의 로맨스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엘파바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관계성은 그녀를 더욱 인간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었으며, 관객들은 그녀의 선택과 고뇌에 깊이 이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위키드는 일방적 악인을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입체화는 현대 문학의 중요한 특징인 ‘반영웅의 인간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사회에서, 위키드는 엘파바를 통해 우리가 습관적으로 규정해온 ‘악’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선악 구도의 재구성

오즈의 마법사가 보여준 명확한 선악의 구분은 위키드에서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기존 작품에서 절대적 선의 상징이었던 오즈의 마법사와 글린다는 위키드에서 훨씬 복잡한 캐릭터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는 권력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위선적인 인물로, 글린다는 인기에 집착하는 허영심 많은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마법사는 동물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감추기 위해 엘파바를 악인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는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악’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마법사에게 진실을 폭로하려 했던 엘파바의 행동은 오히려 정의로운 것이었지만, 권력의 프레임 속에서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글린다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인기와 명성만을 중요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엘파바와의 우정을 통해 성장하며, 결국에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밝히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선과 악이 얼마나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위키드는 ‘악한 마녀’라는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나가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었습니다.

엘파바를 향한 편견과 오해가 어떻게 진실을 왜곡시키고, 결국 그녀를 사회의 적으로 만들어가는지 그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습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나 소문에 의해 만들어지는 ‘악’의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선악 구도의 재구성은 단순히 기존 이야기를 뒤집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와 진실의 왜곡 가능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관객들은 위키드를 통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윤리적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해석

1939년 오즈의 마법사가 만들어진 시대와 2003년 위키드가 초연된 시대는 사회적 가치관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과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위키드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차별과 편견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특히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는 현대사회에서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한 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었습니다.

대학에서 다른 학생들의 따돌림을 당하고,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엘파바의 모습은 오늘날 소수자들이 겪는 현실을 반영했습니다.

이는 1939년 영화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던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또한 위키드는 권력이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는지도 현대적 시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는 과정은 현대사회에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어떻게 악마화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의 문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위키드는 또한 동물권이라는 현대적 화두도 제시했습니다. 말하는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엘파바의 모습은 환경, 생명권과 같은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반영했습니다.

이는 1939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주제였지만, 오늘날에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위키드는 고전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해석을 넘어, 현대사회의 복잡한 갈등과 문제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차별과 편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사구조의 전환

기존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었다면, 위키드는 서쪽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의 이야기로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도로시가 극의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주변적 인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서사 구조의 전환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위키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극도로 싫어했던 두 사람이 점차 가까워지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극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이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성을 조명한 것이었고, 두 마녀의 복잡한 감정선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도로시의 부재는 매우 의미심장했습니다. 원작에서 절대적 선의 상징이었던 도로시가 위키드에서는 오히려 엘파바의 비극을 완성하는 도구적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기존 이야기의 주인공과 악역의 위치를 완전히 뒤바꾸는 동시에, 선악의 구도 자체를 재구성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위키드는 엘파바의 시점에서 오즈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화려하고 매력적으로만 보였던 에메랄드 시티의 어두운 면모, 오즈의 마법사의 위선, 말하는 동물들의 억압 등 기존 작품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측면들이 조명되었습니다.

이처럼 위키드의 서사 구조 전환은 단순히 시점을 바꾼 것을 넘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고전 작품의 재해석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의미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되었습니다.

위키드의 메시지

위키드는 단순한 재해석을 넘어 현대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외모지상주의, 권력과 언론의 유착, 그리고 진정한 선(善)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중요한 사회적 화두와 맞닿아 있습니다.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엘파바의 이야기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시크 대학에서 다른 학생들의 조롱과 따돌림을 당하는 그녀의 모습은, 외적 차이로 인한 차별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심각해지는 외모 차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었습니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가 언론을 통해 엘파바를 악마화하는 과정은,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가 어떻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한 개인에 대한 거짓 소문이 어떻게 대중적 ‘진실’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현대 사회의 미디어 권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위키드는 겉으로 보이는 선함과 실제 행동의 차이를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화려한 겉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글린다와, 옳은 일을 하지만 오해받는 엘파바의 대비는 진정한 선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위키드는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에게 깊이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키드가 단순한 고전의 재해석을 넘어, 현대적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마치며..

오즈의 마법사와 위키드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특히 위키드는 ‘나쁜 마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가며, 우리에게 익숙한 선과 악의 경계를 새롭게 그려냈습니다.

엘파바를 통해 보여준 편견과 차별의 문제, 그리고 복잡한 인간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위키드는 단순한 재해석을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야기를 담아낸 새로운 명작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이야기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감동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